
여러분은 식당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넷플릭스에서 영화 하나 고르는 데 30분씩 걸릴 때가 많습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결정을 못 내리는 제 모습을 보며 '나만 이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다 심리학적으로 설명이 되더군요. 최근에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선택과 행동 뒤에 숨어있는 심리 메커니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결정을 못 내릴까? - 결정장애의 심리학
메이비(Maybe) 세대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1980년대생들을 지칭하는 이 용어는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스가 처음 사용했는데,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확신의 부재'입니다. 여기서 메이비 세대란 어떤 질문에도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글쎄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같은 모호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세대를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제가 직접 겪은 일인데, 얼마 전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숙소를 정해야 했습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니 비슷한 가격대의 숙소가 수십 개나 나오더군요. 리뷰도 읽어보고, 위치도 비교하고, 시설도 따져보다가 결국 2시간을 날렸습니다. 옵션이 3개였다면 10분이면 결정했을 텐데 말이죠.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 또는 '결정 장애(Decision Paralysis)'라고 부릅니다. 햄릿 증후군이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주인공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며 끊임없이 고민만 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5% 이상이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는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무능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서 그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학습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결정 장애의 핵심 감정은 '불안'이며, 이 불안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익명이 만드는 두 얼굴 - 선행과 악플 사이
익명성은 정말 신기한 심리적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같은 사람이 현실에서는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다가도, 온라인에서 닉네임 뒤에 숨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저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다 보면, 평소보다 좀 더 솔직하고 때로는 공격적인 표현을 쓰게 되더라고요.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분청사기 제작자들에게 자기 이름을 제품에 새기도록 명한 사례는 익명성의 힘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이름이 없을 때는 조잡한 가짜 제품들이 시장에 넘쳐났지만, 제작자의 이름을 새기자 품질이 급격히 향상되었죠. 이것이 바로 현대의 '브랜드(Brand)' 개념의 기원입니다.
익명성은 양날의 검입니다. 연말마다 등장하는 익명의 기부자들처럼 선의로 사용되면 한없이 아름답지만, 악의적으로 사용되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악플)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들이 있지 않습니까.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로 설명합니다. 루시퍼 효과란 선한 인격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도 특정 상황이나 환경에 놓이면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루시퍼는 원래 신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던 천사였으나 교만으로 인해 추방되어 악마가 된 존재를 말합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진행한 유명한 '감옥 실험'을 보면, 평범한 대학생들을 무작위로 간수와 죄수 역할로 나누었더니 시간이 갈수록 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점점 더 가학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완장 하나가 사람을 바꿔놓은 것이죠. 이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상황'이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질투는 왜 생기는 걸까? -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감정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 공감하시나요? 저는 솔직히 이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사촌이 잘 되면 축하해줘야지, 왜 배가 아프다는 걸까? 그런데 실제로 제 고등학교 동창이 대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하더라고요. 이게 바로 질투의 감정이었습니다.
질투의 역사는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최초의 살인 사건도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받자, 카인은 극도의 질투심에 불타 동생을 살해한 것이죠. 이렇듯 질투의 DNA는 인류의 피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질투는 생존 전략입니다. 여성이 자신의 남자가 다른 여성에게 한눈파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과 자녀를 보호해줄 보호자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남성의 질투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유전자를 확실히 전달하고 싶은 본능에서 비롯됩니다.
질투의 강도는 물리학의 만유인력 법칙처럼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야 잘 되든 못 되든 나와 상관없지만, 가까이 있어서 나와 직접 비교되는 사람일수록 질투는 강하게 일어납니다. 엄마가 동창 모임 다녀와서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타령을 하면 자녀들이 기가 죽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천재들도 질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발견권 논쟁, 에디슨과 테슬라의 직류 대 교류 전쟁도 결국 질투가 만든 비극이었습니다. 에디슨은 교류의 위험성을 증명하기 위해 개와 고양이를 교류 전기로 죽이는 실험까지 했지만, 결국 테슬라의 교류 방식이 승리했습니다. 여기서 미적분(Calculus)이란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양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로, 현대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는 핵심 이론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다뤄진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이야기도 질투를 잘 보여줍니다. 궁정 악장이었던 살리에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 모차르트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이 절망이 모차르트 독살설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런 심리 상태를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마녀사냥, 그리고 현대의 희생양 만들기
16~17세기 중세 유럽을 피로 물들였던 마녀사냥은 과거의 일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시 마녀로 지목되면 물에 던져져서 살아나오면 마녀로 판정받아 화형당하고, 죽으면 마녀가 아니라고 인정받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마녀 재판의 배경에는 가톨릭과 이슬람의 십자군 전쟁 패배, 종교개혁으로 인한 30년 전쟁, 흑사병과 기근 등 사회적 혼란이 깔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죠.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도 19살의 나이에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습니다. 샤를 7세는 자신의 왕위를 되찾게 해준 잔 다르크의 인기가 치솟자 심한 질투를 느꼈고, 귀족들도 갑자기 부상한 그녀를 시기했습니다. 천문학자 케플러의 어머니 카타리나도 약초 지식이 해박하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렸으나, 케플러의 논리정연한 변론으로 겨우 무죄를 받았습니다.
300년간 유럽 전역에서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이 마녀사냥으로 희생되었는데, 그 중 80~90%가 여성이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특히 불편했던 점은 작가가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종교를 봐도 맹렬한 신도들은 거의가 여성"이라는 식의 근거 없는 일반화는 명백한 성차별적 발언이죠.
현대의 마녀사냥은 '종북 세력', '빨갱이', '○○충' 같은 딱지 붙이기로 나타납니다. 1950년대 미국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성에 105명의 공산당원이 있다"고 발언한 것이 마녀사냥으로 번진 것처럼, 지금도 확실한 증거 없이 누군가를 특정 집단으로 몰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더욱 심각합니다. 한 여성이 방송에서 "신장 180cm 이하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을 했다가 악플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익명의 공간에서는 누구나 마녀사냥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보편적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정을 못 내리는 제 모습, 온라인에서 평소보다 솔직해지는 모습, 가까운 사람의 성공에 묘하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모두 심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이었다니 말이죠. 다만 작가가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낸 점, 그리고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일부 개념을 부정확하게 설명한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심리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히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