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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라 (여행 에세이, 사진 엽서, 변종모)

by minbear3041 2026.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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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라 책 표지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라 책 표지


코로나로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시기, 저는 우연히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여행작가 변종모의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라'였습니다. 엽서처럼 제작된 이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세계 곳곳의 풍경과 함께 시처럼 쓰인 짧은 글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72편의 사진과 글을 읽는 동안, 제 방 안에서도 충분히 여행의 감성에 젖을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실제로 떠나지 못하는 지금, 오히려 이런 책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여행 에세이가 아닌 엽서 형식의 감성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라'는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와는 형식부터 다릅니다. 저자 변종모는 오래토록 여행자로 살아온 사진여행작가로, 카메라와 시집을 들고 세계를 돌며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엽서에 담듯 기록했습니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각 페이지가 마치 누군가에게 보낼 엽서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엽서 형식이란, 단순히 디자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짧고 간결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글쓰기 방식을 뜻합니다. 일반적인 여행기처럼 "이곳은 어떻고 저곳은 어떻다"는 식의 정보 전달이 아니라, 그 순간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책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빛 엽서를 고르는 동안 받게 될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얼굴을, 말투를, 버릇들을, 취향들을 생각한다." 이처럼 저자는 여행지에서 보낸 엽서를 고르듯, 한 장 한 장의 사진과 글을 정성스럽게 배치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페이지마다 잠시 멈춰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여행서처럼 빠르게 넘기며 정보를 습득하는 게 아니라,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물며 저자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단 한 장만 읽고도 하루 종일 그 글귀가 머릿속에 맴돌기도 했습니다.

사진여행작가 변종모가 담아낸 세계

변종모 작가는 프로필에 단 한 줄, "오래토록 여행자"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이 짧은 소개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세계를 떠돌며 사진과 글을 남겼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렌즈에 담은 장소는 미얀마 양곤의 싱그러운 초록부터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꽃잎 흩날리는 메콩강, 쿠바의 골목길, 필리핀의 숨겨진 섬 사르가오, 하와이의 끝없는 바다, 태국 치앙마이의 등불 축제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각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 그곳의 공기와 냄새,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까지 모두 담아냈습니다.

특히 저는 미얀마 양곤 편에서 이런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싫어하는 장소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름다운 것처럼, 좋은 장소도 사람이 싫으면 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결국은 여행도 사람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제가 그동안 다녀온 여행들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멋진 풍경보다도, 그곳에서 누구와 함께했는지가 더 중요했던 순간들이 많았으니까요.

저자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 찍는 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표정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얼굴에 거미줄 문신을 한 미얀마 여인들, 하와이에서 만난 바다를 닮은 소년, 쿠바의 골목에서 시가를 피우는 노인까지. 여기서 '여행 사진'이란 단순한 풍경 사진(Landscape Photography)이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사람을 함께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적 접근(Documentary Approach)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관광 명소만 찍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까지 포착하는 방식입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일상 속에서 발견한 여행의 의미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행은 많은 곳을 가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정된 시간에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능한 많은 장소를 보려고 애쓰다 보면, 자다 일어나 이름도 모르는 어느 건물 앞에서 자신을 가운데 놓고 찍어 온 증명 사진들로 그 기억을 대신하곤 합니다. 그 정도가 되면 여행이 휴식이 아니라 노동에 가까워집니다."

이 부분을 읽고 저는 제 과거 여행들을 돌아봤습니다. 정말로 3박 4일 동안 10곳 이상을 돌아다니며, 나중에 사진을 보면 어디가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 여행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뿌듯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진정한 여행이었나 싶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곳으로 나를 데리고 나와, 지금의 나를 점검해보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단순히 많은 곳을 가는 게 아니라, 한 곳에서 충분히 머물며 그곳의 공기를 느끼고, 그곳 사람들과 교감하며, 그 순간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게 진짜 여행이라는 거죠.

책 속에는 루앙프라방에서 꽃잎을 맞으며 걷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루앙프라방을 끼고 도는 메콩강에는 물보다 많은 꽃잎이 흐른다. 바람이 불면 잔잔한 강물 위로 나비 같은 물결이 번졌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도 아름답게 살라는 꽃의 부탁을 받은 것처럼, 그 속을 걸으면 더욱 아름답게 살고 싶어졌다."

이런 문장들을 읽다 보면, 여행이란 결국 외부의 아름다움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자는 각 장소에서 단순히 풍경만 본 게 아니라, 그 풍경을 통해 삶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를 돌아봤습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홀로 길을 나선 사람들아, 혼자가 좋아서라는 말은 하지 마라. 당신은 오늘도 누군가 돌아올 자리를 비워놓고 길을 나선다."

일반적으로 '솔로 트래블(Solo Travel)'이라고 하면,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는 여행 형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솔로 트래블이란 동반자 없이 홀로 떠나는 여행 방식으로, 자기 주도적인 일정 구성과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과 그리움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저 역시 혼자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데, 정말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보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혼자가 편하고 자유롭지만, 동시에 한쪽이 허전한 느낌. 저자는 바로 그 감정을 정확하게 포착해냈습니다.

책 속 우체국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낯선 곳에 도착하면 자주 우체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곳에 나를 보러 간다"는 표현이 특히 와닿았습니다. 우체국에서 엽서를 쓰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이 누구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 상상하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행위. 그게 바로 여행 중에 나 자신을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거죠.

여행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책에는 필리핀 사르가오 섬에서 만난 여행자 이야기도 나옵니다. 파도를 닮은 사람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람은 영원히 섬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기도 하겠지만, 그 마저 사랑 아니겠나."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행 중의 사랑은 진짜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것도 충분히 진실한 감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영원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요.

책을 덮으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은 단순히 어딘가를 다녀오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의 나 자신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변종모 작가는 72편의 짧은 글과 사진을 통해, 여행이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보여줍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그 이유만으로 모두 근사한 존재들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했던 장소와 사람들은 모두 우리 삶의 일부가 됩니다.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면, 이번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그곳을 느끼며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음 여행에서는 꼭 우체국에 들러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제 마음을, 나중에 돌아봤을 때도 기억할 수 있도록 한 줄의 글로 남겨보려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sgegmzSi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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