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 심리학을 둘 다 좋아하는 제게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는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책이었습니다. 자살에 가까워지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일까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서 구매했는데, 솔직히 읽고 나서도 자살하는 마음이 다 헤아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조금 더 넓고 유연하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제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심리학과 문학이 만날 때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2018년에만 13,67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자살 시도자는 3만 명이 넘었습니다. 정신적 문제, 경제적 문제, 육체적 질병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저자 이민경 씨는 임상심리 전문가로, 자살이라는 주제를 독특하게 풀어냅니다. 안나 카레니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문학 작품 속 자살 사건을 심리학 렌즈로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심리학만 얘기할 때보다 문학과 함께하니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되더군요.
저자는 심리학이 자살의 위험 요인과 보호 요인을 찾는 데 집중하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현상을 모두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문학에 기댈 수 있습니다. 문학은 그저 어떤 현상을 보여줄 뿐 원인과 원리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증언하되 가끔은 증언조차 거부하죠.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종종 심리학을 앞질러 가기도 하고, 심리학이 미처 다가가지 못했던 영역에 먼저 불을 밝히기도 합니다.
베르테르 효과와 전염되는 마음
21세기 들어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더 많이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2008년 최진실 씨,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아이돌 출신 연예인이 무려 3명이나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유명인이 자살로 사망한 경우 종종 일시적으로 자살률이 상승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죠.
최진실 씨가 자살한 직후 국내 연구에서 3주 동안 자살 사망자가 급증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19년 네이처 리서치 논문을 보면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이 자살로 사망한 경우에만 관찰되었고,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유명인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마음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모방 자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저는 그 표현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동기와 역동을 축소하는 것 같거든요. 많은 임상가들은 기존의 자살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미디어에서 유명인의 자살을 접하면서 자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공감하면서 자살 욕구를 키워간다고 추측합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전 유럽을 휩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이 책을 읽고 자살을 감행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베르테르와 비슷한 연령대 남성이었습니다. 아예 베르테르가 사망 당시 입었다는 푸른 연미복과 노란색 바지를 입고 자살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자살로 이어지는 마음의 계단
오코너의 동기 결단 모형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겪는 마음의 변화를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동기 전 단계, 동기 단계, 결단 단계입니다.
동기 전 단계는 아직 특별한 자살 동기가 없지만 자살 위험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기질적, 환경적 요소들을 가진 상태입니다. 동기 단계에서는 패배감과 굴욕감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개인에게 아주 중요한 뭔가를 상실했거나 얻는 데 실패했을 때, 혹은 사회적으로 거절당하거나 공격을 받을 때 경험하는 감정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덫에 걸린 느낌으로 변화합니다. 도무지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한 느낌이죠.
결단 단계는 자살 의도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요소들을 설명합니다. 자살 도구 획득 가능성, 가까운 타인의 자살 경험, 구체적 계획, 충동성,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부재, 고통 감내 능력, 과거 자살 행동 이력 등이 포함됩니다.
제 경험상 이 책의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자살에 대한 심상이었습니다. 자살에 대해 반복적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 실제로 자살 행동을 하게 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베르테르 역시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자살이나 죽음 같은 심상을 더욱 자주 떠올렸고, 죽음을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살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살하면 조금은 무섭고 슬픈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책 속 등장인물과 작가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 주드 같은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데 댈러웨이 부인을 제외하고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생애를 돌아보며 어떠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삶이 자살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결국 힘겨운 시기를 넘긴 사람이 주는 위안도 있습니다. 베르테르는 자살했지만 창작자인 괴테는 82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괴테는 이 소설을 쓴 뒤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말년에 괴테는 동료 작가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그것을 보기만 해도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낳게 한 병적인 상태를 다시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책 속에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을 풀어놓은 뒤 자신은 그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어 삶의 다음 장으로 옮겨갔습니다. 오스트리아 작가 에리히 프리트가 말했듯 많은 경우 문학은 삶을 혐오하여 쓴 것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하여 쓴 것도 사실은 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쓴 것 같습니다.
나의 행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내 가족, 주위의 내 이웃들의 고통도 함께 이해하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니까요. 20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고, 심리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도 문학 독서 경험을 축소하지 않으면서 자살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