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어머니의 힘 (정채봉 작가, 양인자 수필, 세 살의 기억)

by minbear3041 2026. 2. 21.
반응형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책 표지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책 표지


세 살에 어머니를 여읜 정채봉 작가는 평생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해송 타는 냄새만 맡으면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며,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강렬한 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바로 그런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정채봉 작가가 평생 품은 그리움

정채봉 작가는 세 살 때 스무 살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떠났고,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할머니가 꺼내 보여준 부담 속에서 처음 어머니 사진을 봤습니다. 둥근 턱에 작은 입, 하얀 박꽃 같은 얼굴. 정말 열여덟에 시집온 소녀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도 엄마라는 말을 한 번 듣지 못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형수라고 부르니 어린 아들도 형수라고 따라 불렀던 겁니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핏이 부었다고 합니다. 저도 이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작가는 어머니가 수놓은 밀레의 만종 그림을 아버지 방에서 발견합니다. 일본에서 18년을 떨어져 지낸 아버지가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둔 그림이었습니다. 그제야 작가는 아버지의 삶도 회한과 인고의 나날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어머니라는 존재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깊이 새겨지는지 실감했습니다.

두 엄마 사이에서 자란 딸의 기록

송영아 씨의 글은 둘째 마누라의 딸로 태어난 삶을 담았습니다. 호적에는 처녀로 남아 있는 어머니. 버스를 타면 돈이 있어도 절대 내지 않던 어머니. 큰 엄마의 큰 소리에 아무 말 못 하고 당하기만 하던 어머니.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그럼에도 자식을 끝까지 지켜낸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어느 날 은행에서 적금을 찾으러 갔는데, 본인이 아니라 안 된다고 했습니다. 딸이라고 하니 딸이라는 것을 증명할 서류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주민등록에도, 의료보험 카드에도 엄마와 딸의 관계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자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고 합니다. 엄마의 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현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엄마는 배우지 못한 게 한이라며 딸을 서울까지 대학 보냈습니다. 고3 때는 매일 저녁 따뜻한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에도 하늘나라로 유학 보냈다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저는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진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이런 의미구나 싶었습니다.

양인자 작가의 뒤늦은 깨달음

양인자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앨범에 거의 없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겨우 찾은 사진 한 장 뒤에는 14살 소녀가 쓴 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만수무강하옵소서. 작가는 그 글을 보고 깔깔 웃었습니다. 가슴에 없는 말을 상투적으로 쓴 게 너무 우스워서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어머니는 44세에 딸을 낳았고, 전쟁통에 과부가 되어 자식 셋을 키웠습니다. 집안일을 전혀 시키지 않았고, 남보다 잘하면 못하는 사람의 종노릇밖에 못한다는 말을 들려줬습니다. 작가는 어머니가 딸이기보다 한 여자로서 자신을 생각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어머니의 깊은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작가는 자신의 고통에 갇혀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갑자기 하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공허하게 터진 그 웃음. 작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슬픔과 고통이 무릎에 붙은 빨간 단풍잎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 종일 말 상대 하나 없는 빈집에서 중풍으로 누워 계셔야 하는 어머니의 외로움에 비하면 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어머니라는 존재가 얼마나 깊고 넓은 강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시대를 넘어 똑같다는 걸 느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법정 스님도, 주부도, 작가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어머니를 기억했습니다. 못살던 시절을 겪었고, 자식을 위해 헌신했고, 가정을 지켰던 어머니들. 저도 언젠가 엄마가 되면 이런 마음을 알게 될까요. 지금 당장은 자신이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머니의 품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m96a75KzYk

반응형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https://minbear304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