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그저 추상적인 위로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정영국 작가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읽으면서, 자기애(自己愛)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식과 행동의 전환임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자기애란 자신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 책은 85개의 짧은 글을 통해 관계, 애정, 인생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우리가 어떻게 나를 잃어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찾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관계의 심리학, 호오(好惡)로 움직이는 인간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관계는 호오(好惡)에 의해 움직인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여기서 호오란 좋아함과 싫어함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로, 인간관계의 친밀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작가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같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이 같을 때 훨씬 빠르게 가까워진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공통의 적 효과(Common Enemy Effect)'라고 부르며, 집단 내 결속력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분류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저 역시 이 부분을 읽으며 과거 직장 생활을 떠올렸습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 동료보다, 같은 상사의 불합리함에 공감했던 동료와 훨씬 더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책은 이러한 심리 구조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조언을 제시합니다.
- 연인 관계: 상대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고 배려하는 것이 장기적 관계 유지에 유리합니다
- 우정: 친구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관계 지속의 핵심입니다
- 직장: 상사와 동료가 싫어하는 행동 패턴을 먼저 파악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작가는 "백번 잘해주는 것보다 한번 싫어하는 것을 고쳐주는 게 낫다"고 정리합니다. 이는 심리학의 '부정 편향(Negativity Bias)'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부정 편향이란 인간이 긍정적 자극보다 부정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지 경향을 말하며, 관계에서도 좋은 경험 여러 번보다 나쁜 경험 한 번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연구소).
제 경험상 이 원리는 특히 장기 연애에서 실감했습니다. 연인이 좋아하는 꽃을 선물하는 것보다, 연인이 싫어하는 늦은 답장 습관을 고치는 것이 관계에 훨씬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책이 제시하는 관계론은 이상적이지 않지만, 바로 그 현실성 때문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자기 인식의 실천, 가진 것을 알아주기
책의 후반부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으로 초점이 이동합니다. 자기 인식이란 자신의 감정, 욕구,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심리 능력으로, 정서 지능(EQ)의 핵심 구성 요소입니다. 작가는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걸 가진 사람"이라며, 우리가 부족함에 집착하느라 이미 소유한 것들을 간과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내가 가진 것 리스트'를 작성해보라고 제안합니다. 생명, 건강, 관계, 물건, 능력까지 모두 포함하면 수첩 한 권으로도 모자랄 만큼 많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사 일기(Gratitude Journal)' 기법과 연결 지을 수 있는데,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감사 일기가 우울감 감소와 주관적 행복감 증가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저는 이 조언을 읽고 실제로 노트에 제가 가진 것들을 적어봤습니다. 처음엔 몇 개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물리적 소유물(책, 노트북, 침대)부터 무형의 자산(경험, 지식, 관계)까지 나열하니 두 페이지가 넘어갔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불행하다고 느낀 건 정말 가진 게 없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몰라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다만 책에서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작가는 "있는 것을 찾아 알아주고 이롭게 활용하라"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은 다소 추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라"는 조언은 맞지만, 그 능력을 어떻게 발견하고 개발할지에 대한 단계별 가이드는 부족했습니다. 이 부분은 독자 스스로 채워나가야 할 몫인 듯합니다.
책은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싫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릴 적 싫었던 것들(낮잠, 엄마 잔소리, 집밥)은 시간이 지나 그리움이 되지만, 지금 싫은 것들(직장 스트레스, 인간관계 갈등)은 영원히 싫을 것만 같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명확한 해답 대신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고 말해달라"는 솔직한 바람을 표현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오히려 위로받았습니다. 모든 고민에 해답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그저 견디고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메시지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 특유의 '당신은 할 수 있다'는 식의 공허한 응원 대신, '당신도 서툴고 나도 서툴다'는 공감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게 느껴졌습니다. 저처럼 자존감이 떨어지고 타인과 비교하며 힘들어하는 분이라면, 이 책이 당장의 변화보다는 '나를 알아가는 시작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은 한 번의 독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상 속 작은 선택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