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정말 자연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책 한 권이 이 질문을 15년 동안 준비해왔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류시화 작가가 펴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아메리카 원주민, 흔히 인디언이라 불리는 이들이 백인의 침략 앞에서 남긴 연설문을 모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현대 문명이 놓친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인디언 연설문이 전하는 자연관의 본질
일반적으로 인디언들은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통념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인디언(Indian)이라 잘못 명명했고 총과 종교를 앞세워 그들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가진 생태학적 지혜(ecological wisdom)는 현대 환경과학이 뒤늦게 증명하고 있는 진리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생태학적 지혜란 자연을 착취의 대상이 아닌 공생의 파트너로 보는 관점을 의미합니다. 인디언들은 땅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사냥할 때도 필요한 만큼만 취했으며,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때도 허락을 구했습니다. 시애틀 추장의 유명한 연설문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은 1854년 백인 관리가 원주민 보호구역 설치를 통보하러 왔을 때 던진 것으로, 당시로서는 이해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탄소배출권 거래제(carbon credit trading system)가 시행되는 현실을 보면 섬뜩할 정도로 예언적입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란 기업이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파는 제도로, 결국 공기에 가격표를 붙인 셈입니다. 인디언들이 경고했던 바로 그 일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는 문명과 야만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애틀 추장 연설문에 담긴 경고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텍스트입니다. 1854년 워싱턴 대통령이 보낸 사절단 앞에서 행한 이 연설은 생물다양성 보전(biodiversity conservation)의 중요성을 150년 전에 이미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생물다양성 보전이란 생태계 내 모든 생명체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애틀 추장은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현대 생태학의 핵심 개념인 '먹이그물(food web)' 이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을 때 제가 놀란 건, 이들이 과학적 방법론 없이도 직관과 경험만으로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꿰뚫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현대 과학은 2024년 기준으로도 생물종 간 상호작용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는데, 인디언들은 이미 "들짐승이 사라지면 인간은 혼의 깊은 고독감 때문에 말라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출처: 국립생태원).
또 다른 연설문에서는 연어 회귀(salmon run) 현상을 축제처럼 맞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연어 회귀란 연어가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생태 현상으로, 인디언들은 이를 통해 다가올 겨울의 식량 사정을 예측했습니다. 그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었던 것입니다.
주요 연설문들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땅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서 빌린 것이다
- 자연에서 취할 때는 반드시 허락을 구하고 감사를 표해야 한다
- 문명은 질서를 깨려 노력하지만 자연은 이미 완전한 질서다
-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복수를 불러온다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가치
일반적으로 우리는 GDP 성장률, 기술 발전 속도로 문명의 수준을 평가하지만, 제 경험상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기준이 얼마나 일면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인디언들이 가진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은 오늘날 UN이 제시하는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보다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 능력을 해치지 않는 발전을 의미합니다. 인디언들은 "필요한 만큼만 땅에서 취하고 취한 만큼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는 현대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모델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출처: 환경부).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인디언 아이들의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성년이 되면 홀로 산 꼭대기에 보내 며칠간 금식하며 명상하게 했습니다. 위대한 신비 앞에 자신을 내맡기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반면 현대 교육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교실에서 자연을 교과서로만 배웁니다. 어느 쪽이 더 본질적인 교육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제 소비 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마다 쌓이는 일회용 용기, 옷장에 가득한데도 사는 옷들. 인디언들이라면 이런 삶을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문명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장소가 없고 귀를 욕되게 하는 소음만 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많은 것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류시화 작가는 15년간 수백 여 권의 문헌을 참고해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것이, 이 연설문들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생물종 멸종, 미세먼지로 신음하는 지금, 인디언들의 목소리는 더욱 절실하게 들립니다.
이 책은 두껍지만(약 400페이지) 내용이 어렵지 않아 잘 읽힙니다. 저처럼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다만 읽다 보면 인간의 잔혹함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인디언들의 혼을 기리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천천히 읽으며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시길 권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앞이 아니라 과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