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끝난 뒤에야 사랑을 알게 된다는 말, 정말일까요? 저는 김연수 작가님의 일기를 읽으며 이 질문이 단순히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작가님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쓴 일기를 통해 사랑의 부재,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절망, 그리고 마흔을 넘긴 뒤 맞닥뜨린 생애 전환기의 고민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특히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컴필레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수천 통의 사연을 읽고, 그 속에서 '부재로서만 증명되는 사랑'의 본질을 목격한 경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간결하지만 깊이 있는 문장들 속에서 개인의 고통이 사회적 아픔과 맞닿아 있음을, 그리고 그 아픔을 기록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부재로 드러나는 사랑, 기록으로 남은 흔적
김연수 작가님은 2014년 롤랑 바르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사람들이 보낸 사랑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사연과 함께 도착한 물건들—책갈피 속 말린 꽃잎, 커플링, 손편지, 영화 티켓, 카페 스탬프카드—은 모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흔적(trace)'이란 과거에 존재했던 무언가가 남긴 물리적·심리적 자국을 의미합니다(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쉽게 말해, 이미 사라진 것의 증거이자 기억의 단서인 셈이죠.
롤랑 바르트는 "사랑은 부재로서만 그 존재를 증명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승이 제자의 머리를 물속에 붙잡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꺼내며 "네가 지금 공기를 원했던 것처럼 진실을 원할 때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리라"고 한 불교 우화처럼, 사랑도 잃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이별 후 오랫동안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그때는 정말 행복했구나'를 뒤늦게 알았던 순간 말이죠.
작가님이 받은 사연 속 사진들에는 외로움이나 후회의 목소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서로 깍지 낀 두 개의 손, 함께 걸어가는 다리, 벚꽃 아래 함께 있는 모습"만이 순수한 묵음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 사랑이 있었다는 것, 그 어떤 사랑이 이제 여기 없다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는 일은 모두 사랑이 끝난 뒤에야 가능하다는 게 작가님의 통찰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노래들—'당신은 하늘에 살고 있지', '잘 지내자 우리', '나의 사랑'—은 모두 이별 후 남은 그리움의 기록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제가 매일 쓰는 일기도 결국 '지나간 시간의 부재'를 기록하는 행위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쓴 일기는 내일이 되면 이미 과거이고, 그 과거는 오직 기록으로만 존재하니까요.
생애 전환기, 차마 그럴 수 없는 마음
2015년 2월, 작가님은 마흔 살을 넘기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송한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생애전환기(Life Transition Period)'란 신체적·정신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를 뜻하며, 건강보험에서는 만 40세와 만 66세를 기준으로 설정합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암, 뇌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 발병률이 급상승하는 나이라는 의미죠.
작가님은 이 통지서를 보며 "생애의 전환"이라는 네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내 삶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만 40세 이후는 '절정'이고 만 66세 이후는 '결말'인 셈입니다. 소설가인 작가님은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면 절망이 가장 깊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가까우면 밤은 더욱 어두워지듯, 가장 어두울 때 작은 빛이 환하게 보이는 법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아직 끝나지 않은 종결 상태', 즉 마음은 죽었는데 몸은 아직 살아 있는 상태가 가장 힘듭니다.
작가님은 지난 몇 년간 신문을 읽을 때마다 "왜 이다지도 나쁜 세계가 존재해야만 하는가" 의문을 품었다고 합니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절망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습니다. 저 역시 그 시기에 뉴스를 볼 때마다 비슷한 무력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차라리 이런 세계는 지금 당장 끝장나는 게 옳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동시에 "차마 그럴 수는 없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바로 이 "차마 그럴 수가 없다"는 마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작가님은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 '미궁'과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다시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처음 들었던 그 음악을 30년 만에 제대로 듣게 되면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의 얼굴이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나빠졌을까, 좋아졌을까? 그제야 깨달은 것은 "거울은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에 있고, 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뿐입니다. 이 통찰은 작가님을 괴롭혔던 의문의 해결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2017년 2월 1일 일기에서 "이 인생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썼습니다. 여기서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란 프레더릭 알렉산더의 '알렉산더 테크닉(Alexander Technique)'—즉,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통해 마음의 사용법까지 배우는 심신 교육 방법론—에서 영감을 받은 표현입니다(출처: 한국알렉산더테크닉협회). 쉽게 말해, 우리는 평생 자신을 잘못 사용하면서도 그게 옳다고 느끼며 살아간다는 뜻이죠.
저는 이 대목에서 제가 기타를 십 년째 연습하면서도 실력이 제자리인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손가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거죠. 작가님은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 앞에서'를 인용하며, 57세에 쇼팽의 발라드 1번에 도전한 가디언 편집국장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러스브리저는 출근 전 20분 피아노 연습을 하면 "뇌의 화학 반응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나중에 그것이 '신경회로망의 재편(Neural Rewiring)'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배우는 일은 단순히 기술 습득이 아니라 내부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기록의 의미, 일기를 쓰는 이유
김연수 작가님의 일기는 단순한 일상 기록이 아닙니다. 개인의 고민과 사회적 사건, 문학과 음악, 철학과 심리학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하나의 사유 과정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제 일기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매일 쓴 일기를 통해 "이다지도 나쁜 세계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가 나빠진 게 아니라 세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변했음을, 그리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생애 전환'의 의미임을 깨달았습니다.
작가님은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평범한 인사로 일기를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비극, 마흔을 넘긴 뒤의 절망, 사랑의 부재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국 일상으로 돌아와 "좋은 하루"를 기원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차마 그럴 수는 없다"는 인간다움의 표현이 아닐까요.
만약 일기를 쓰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김연수 작가님의 이 책을 권합니다.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도구이자, 부재를 증명하는 흔적이며, 세계와 나 사이의 거울을 닦는 행위임을 알게 될 겁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고 나서 제 일기장을 다시 펼쳤습니다. 오늘 하루도, 내일도, 조금씩 기록하며 나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가려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H5vUGtEEGA&t=270s